언론보도

사단법인 유쾌한반란은 '실천'을 중시합니다.

[스토리人] "당연한 '일벌'의 삶에 질문을"... 세상에 용기 건네는 '유쾌한 반란’


  • [NGO 저널] 박주연 기자
  • ㅣ 2026.07.28




<편집자註> 시민사회는 '시대의 창(窓)'일뿐 아니라 가장 강력한 '여론 형성의 장(場)'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알지 못하고, 세상 사람들의 생각을 읽지 못하고선 미래를 꿈꿀 수 없습니다. 수많은 사람(人)과 쉴새없이 소통하는 시민단체 활동가들의 각양각색 사연을 [스토리人] 코너를 통해 소개해 드립니다.

정년이 보장된 대학을 박차고 나와 상근 직원 ‘0명’인 신생 비영리단체의 첫 실무자로의 깜짝 변신. 박새아 '유쾌한반란' 상임이사의 궤적은 안정을 뒤로하고 가슴 뛰는 인생의 재미와 의미를 택한 결과물이다. ‘누구보다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맨땅에서 조직의 뼈대를 세운 그는, 어느덧 단체의 든든한 기둥이 되었다.

그런 그는 활동가에게 맹목적인 희생과 '열정페이'만을 강요하는 사회적 편견에 반기를 드는 유쾌한 반항아이기도 하다. 남들이 정해놓은 쳇바퀴 같은 '일벌'의 삶에 끊임없이 의문을 던지며, 청년들이 두려움 없이 실패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도록 튼튼한 무대를 짓고 있는 박 이사의 유쾌한 여정을 따라가 봤다.

 - 이사님 반갑습니다. 사단법인 ‘유쾌한반란’의 탄생이 경제부총리를 지내신 김동연 전 경기지사의 아이디어에서 비롯됐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인 단체 설립 계기가 듣고 싶습니다. 단체 설립 당시 어떤 문제의식을 가지고 계셨는지, 혹시 청년 문제의 심각성 때문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안녕하세요. 단체를 설립할 당시, 김동연 전 지사님은 우리 사회의 세 가지 핵심적인 문제 상황에 주목하셨습니다. 바로 사회적 이동이 단절된 상황, 혁신이 부족한 상황, 그리고 소통과 공감의 부재였습니다. 다만, 특정 세대인 청년의 문제에만 국한했다기보다는, 이러한 세 가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작더라도 우리 주변에서 실질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만들고자 하셨죠.

사실 저는 법인 설립 초기부터 관여했던 것은 아니에요. 설립되고 10개월 정도 흐른 후에 합류하게 되었는데, 이미 그 이전에 지사님의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한 세 가지 초기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어요. 첫째, 혁신이 가장 더딜 것 같은 농어촌 지역을 직접 다니시며 농어촌 혁신을 지원하는 '마중길'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드셨어요. 둘째로는 기성세대와 청년들 사이의 소통과 이해 부족을 해결하고자, 청년이 연사가 되고 시니어가 청중이 되어 강연을 듣는 리버스 강연 프로그램 '영·리해'를 기획하셨죠.

마지막으로 사회혁신 기업들이 서로의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공유하고 그 취지를 확산하기 위한 '소셜 임팩트 포럼'을 만드셨습니다. 이 초기 프로그램들은 현재의 실무진이 아닌, 상근 직원이 없는 상황에서 본인과 뜻이 맞는 초창기 멤버들을 모아 하나하나 기획하고 실행하신 결과물입니다"

- 유쾌한반란이 그렇게 탄생한 것이로군요. 상근 직원 없이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사무실이 유지되다 보니 아무래도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겠네요. 이사님께서는 어떤 계기로 이 단체에 합류하시게 된 건가요?

"그렇습니다. 당시 부이사장님과 제가 봉사 모임을 통해 인연이 있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저를 찾으시더라고요. 당시 저는 대학교에서 10년 가까이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던 시점이었습니다. 부이사장님께서는 상근 직원이 한 명도 없는 상황에서 실무와 책임을 동시에 맡아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하셨죠. 그리고 이 법인을 단기적인 모임이 아니라 길게 내다보는 지속 가능한 조직으로 만들고 싶다며 저에게 합류를 권유하셨어요. 두 가지 역할을 모두 잘 해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셔서 결국 합류를 결심하게 됐습니다"

 

상근직 '0명' 신생 단체로의 과감한 이직이 바꾼 인생 항로

- 정년이 보장되고 연금 등 조건이 좋은 안정적인 대학 교직원 자리를 포기하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모를 신생 단체로 이직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텐데요.

"처음 제안을 들었을 때는 대학 시절에 학생들을 돕고 변화를 이끌며 느꼈던 보람이 떠오르더군요. 내가 의미 있게 생각했던 일을 다시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기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대학은 안정성이 보장된 곳이라 동시에 고민이 깊었죠. 그래서 남편과 이 문제에 대해 상의를 했는데, 남편이 "답이 간단한데? 가는 게 맞지"라고 하더라고요. 너무나 쉽게 대답을 해주는 거예요.

이유를 물으니, 그 일은 당신이 누구보다 더 재미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거예요. 그러면서 흔쾌히 응원해 주더라고요. 남편 역시 이직을 꽤 경험한 편인데, 연봉이나 조건도 중요하지만 '내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인가,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가'를 이직의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는 사람이거든요. 그 기준을 저에게도 적용해 주어 결정이 한결 쉬웠습니다"

- 자아 성취나 이직을 중요시하는 배우자라도 상대방에게는 안정적인 직장을 권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편분과 가족들의 든든한 지지가 큰 힘이 되었겠네요.

"네, 정말 큰 힘이 됐습니다. 사실 직장 동료들은 왜 굳이 자아실현을 직장에서 하려 하느냐며, 돈은 직장에서 벌고 의미 추구는 밖에서 하라고 충고를 해주거나 어떤 분들은 만류를 하기도 했죠. 부모님이나 가족들도 비영리법인이라는 완전히 새로운 분야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 내심 놀라고 걱정하셨겠지만, 결국에는 재미있게 일해보라며 모두 응원해 주셨어요.

저희 가족이 특별히 거창한 공익적 가풍을 가진 것은 아니지만, 보수나 환경보다는 스스로 마음에 닿는 일,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일에 도전하는 것을 늘 지지해 주시는 분위기가 제 이직 결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 같습니다"

(... 중략)

- 지금까지 추진하신 다양한 사업 중, 대외적인 성과를 넘어 실무자로서 가장 뿌듯함을 느꼈던 대표적인 프로젝트 하나를 소개해 주신다면요?

"구직도 취업 준비도 잠시 멈춘, 이른바 ‘쉬었음’ 상태의 청년들을 대상으로 매주 한 번씩 크로스핏이라는 그룹 운동을 진행하며, 육체적인 활기를 되찾고 청년들 간의 연대감을 형성하는 '쉬어 가도 괜찮아'라는 프로그램을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사업이 특별한 이유는 글로벌 기업 '룰루레몬'의 커뮤니티 웰빙 그랜트 사업에 선정되어 저희가 처음으로 유치한 해외 펀드이기 때문이에요.

이 프로젝트는 온전히 실무진의 역량과 힘으로 기획하고 검증받아 따낸 사업이라 무척 뿌듯합니다. 룰루레몬 측은 심사 과정에서 조직의 미션과 거버넌스, 회계 투명성을 매우 깐깐하게 검증했지만, 일단 파트너로 선정된 후에는 잦은 중간보고나 예산 전용 통제 없이 목적에 맞게만 쓰라며 전적인 신뢰를 보여주었죠. 지원 기관이 단체를 이렇게까지 믿고 응원해 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매우 감동적이고 의미 있는 경험이었습니다"

 

"비영리니까 무조건 청빈? 열정페이 비판하면서… 우리 사회가 그리 인색해서야"

- 설립자이신 김동연 전 지사님은 이후에도 관심을 보여주고 계신가요?

"정치를 시작하신 후 법인의 공식적인 직함은 모두 내려놓으셨습니다. 하지만 과거에 이사장 겸 '시니어 인턴'으로 불리며 사무실에 오셔서 직접 커피 배달도 해주시고 저희 실무진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주던 든든한 어른이셨어요.

실무적인 기획이나 운영은 100% 직원들에게 위임해 주셔서 저희가 주도적이고 재미있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셨죠. 지금은 운영에 관여하시지 못하지만, 유쾌한반란의 정회원이자 영원한 시니어 인턴으로서 마음 깊이 응원을 보내주고 계십니다.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다시 인턴으로 돌아오시면 좋겠다는 즐거운 상상도 해봅니다"

- 지금까지 다 좋은 이야기만 해주셨는데, 인간적으로 너무 힘들고 피곤해서 '그냥 대학에 남을 걸 그랬나' 하고 후회하신 적은 솔직히 없으신가요?

"후회한 적은 없지만, 가끔 현실의 벽을 체감하며 상황이 달라졌음을 느낄 때는 있죠. 예전 직장은 조건이 좋아 대출 우대도 있었는데, 지금은 신용 점수가 높음에도 불구하고 대출이 나오지 않을 때가 있거든요. 하하.

또 다른 고충은 원칙과 안타까운 마음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일이에요. 저희의 노력이 다 올바르게 전달되지 않을 때도 있고, 지원금의 한계 때문에 심사에서 떨어지시거나 연장을 받지 못한 분들이 "왜 안 되느냐"며 항의 전화를 주실 때가 있어요. 마음 같아선 다 해드리고 싶지만 원칙을 지키며 가야하기에 그 사이에서 중심을 잡는 것이 참 어렵게 느껴집니다"

- 단체가 7년 차에 접어들었고 이사님도 5년 이상 비영리 생태계에 몸담고 계시는데, 대한민국의 비영리 민간단체에서 활동하시면서 피부로 느끼는 불편함이나 사회적 편견도 있으실 것 같아요.

"비영리 법인에서 일한다고 하면 흔히 무조건 착한 사람, 혹은 소명 의식 하나만으로 현실적인 보상이나 욕심은 포기해야 하는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짙습니다. 개인의 희생과 헌신을 당연하게 전제하는 것이죠. 예를 들어, 사회적기업 대표가 외제차를 타거나 금전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그 이면의 맥락은 배제한 채 비영리 단체 사람이 돈을 밝힌다며 청빈이라는 잣대로만 재단하려 하는 경향이 있죠. 심지어 생계로 일하며 월급을 받는 것에 대해 "왜 자원봉사가 아니냐"며 의아해하시는 분들이 계시기도 해요.

열정페이에 대해서는 강력 비판하면서 유독 비영리기관이 현실적인 수준의 연봉을 지급하는 것에는 인색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모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소셜 임팩트 생태계가 지속 가능하려면 맹목적인 개인의 희생에 기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이 분야 역시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일로 인정받고 안정적인 경제적 기반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네 인생은 네 것, 스스로 칭찬해라"… 청년 지원과 맞닿은 워킹맘의 양육 철학

- 고등학교 1학년 자녀를 둔 워킹맘이시잖아요. 일과 양육의 균형은 어떻게 잡고 계신가요?

"네, 워킹맘이다 보니 아이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미안함이 아이를 대하는 감정의 1순위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아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엄마는 너를 가장 사랑하지만, 엄마 개인의 삶도 무척 중요하단다. 네 인생은 네가 책임지고 엄마 인생은 엄마가 책임지는 거야."라며 아이를 철저히 독립된 인격체로 존중했습니다.

한 번은 아이가 대학에 안 가고 그냥 놀고 싶다고 하길래, "대학을 안 가도 좋지만 놀 수는 없다. 대학에 안 가면 네 삶을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시기가 그만큼 더 빨라지는 거야"라고 단호하게 말해줬죠. 다행히 스스로 생각하고 결정하는 주도적인 아이로 자라주었습니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저의 양육 방식이 제가 하는 일과도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창 아이가 무엇이든 잘 해내고 싶어 애쓰면서도 스스로 못한다고 자책할 때가 있었어요. 그때 제가 "다른 사람의 칭찬은 참고용일 뿐이다. 아무리 남들이 칭찬해도 네가 속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는 못한다'고 생각하면 절대 행복할 수 없다"며 스스로에게 잘한다고 칭찬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얘기해줬죠.

이 이야기는 저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청년들에게도 똑같이 해줍니다. 프로젝트를 완벽하게 해내려다 힘들어하는 청년들에게, 스스로 칭찬하고 믿음을 쌓아가는 과정이 결국 시도할 수 있는 힘이 된다고 말해주죠. 저희 단체는 청년들이 두려움 없이 시도하고 실패할 수 있도록 돕는데, 아이를 키울 때도 완벽한 환경을 다 세팅해주기보다는 스스로 부딪혀 시도하고 실패해 볼 여지를 지속적으로 열어주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진=픽사베이

사진=픽사베이

 

"당연한 일벌의 삶에 의문 던졌으면"… 꿀벌 마야가 청년들에게 건네는 용기

- 말씀 잘 들었습니다. 유쾌한반란과 이사님 개인의 향후 목표, 그리고 마지막으로 일상 속에서 유쾌한 반란을 꿈꾸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제 개인적인 목표는 제가 없더라도 조직이 안정된 시스템 안에서 자생적으로 잘 굴러가게 만드는 것이에요. 단체의 단기적인 목표라면, 현재 서울에 집중되어 있는 대면 프로그램의 한계를 극복하고, 다양한 기관과 협력하여 기회가 더욱 절실한 지방의 청년들에게까지 저희의 지원이 닿게 하는 것입니다.

청년들에게는 동화 『꿀벌 마야의 모험』에 나오는 구절을 꼭 들려주고 싶어요. 주인공 마야는 정해진 벌집을 떠나며 "나는 다른 꿀벌들과는 달라. 기쁨과 놀라움, 경험과 모험을 위해 태어났다고. 위험 따위는 두렵지 않아. 나한텐 힘과 용기와 침이 있잖아?"라고 말하죠.(※편집자주 : 독일 작가 '발데마르 본젤스(Waldemar Bonsels)'가 1912년 집필한 작품) 우리 청년들도 남들이 정해놓은 당연한 일벌의 삶이 과연 내게 맞는 것인지 의문을 던져보고, 때로는 익숙하고 안전한 환경에서 잠깐이라도 벗어나 보길 권하고 싶습니다.

대단한 혁명이나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에요. 내 주변의 너무나 당연하고 소소하다고 생각되는 일상에 작은 질문을 던지고, 아주 미세한 변주를 시도해 보는 것. 바로 그 작은 발걸음에서부터 청년 여러분의 멋진 '유쾌한 반란'이 시작될 것이라 믿습니다"

 기사 전문 보러가기